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달카날 해전 (문단 편집) ==== 미 함대의 이탈과 전투 종료 ==== 키리시마의 전 포문이 침묵하자, 사우스다코타는 그제서야 상대적으로 취약한 후면을 적 전함들에게 노출할 수 있게 되었고, 최대한 빨리 좌현으로 변침해서 남쪽으로 도망갔다. 통신설비가 모조리 파괴되어서 리 제독의 승인도 얻지 못해 적전도주를 한 셈이 되었으나, 리 제독은 전투 이후 보고에서 사우스다코타가 무사히 도망가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고 두둔했다. 하지만 사우스다코타의 전기 문제를 몰랐던 데이비스 함장은 전함 사우스다코타가 리 제독에게 '어디로 가는지는 물론, 간다는 사실조차 보고도 안한 채로 내뺐다.'고 개치 함장을 비난했다. 이런 비난이 본의 아니게 리 제독이 개치 함장을 감싸기 위해 했던 거짓말을 폭로한 셈이 되었다. 리 제독은 사우스다코타가 어디로 갔는지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좌현으로 변침해 과달카날섬 서쪽을 돌아 남쪽으로 도망가리라 예상하고는 워싱턴의 침로를 정 반대인 북서쪽의 러셀 섬 방향으로 잡으라고 지시했다. 곤도 함대는 그때까지도 워싱턴을 찾지 못했으나, 북서쪽에서 발견하고는 구축함들의 남은 어뢰를 전부 발사했다. 워싱턴을 계속 추격해주길 바랐던 리 제독의 기대와는 달리, 일본 구축함들은 워싱턴이 어뢰를 피하다 좌초하길 기대하며 어뢰 발사 후 연막을 치면서 일제히 반전해버렸다. 데이비스 함장은 직접 워싱턴을 조함하면서 러셀섬의 뻘밭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면서 일본 해군이 발사한 어뢰를 전부 따돌리거나 좌초시켰다. 곤도 제독은 함대의 어뢰가 전부 소진되자, 새벽 1시 4분에 워싱턴 추격을 포기하고 모든 함대에게 교전지역 이탈 및 재집결을 지시했고, 함대는 1시 30분에 재집결을 완료했다. 새벽 2시에 우라나미는 아야나미의 생존자들을 구출하기 시작했고, 새벽 3시 25분에 아야나미를 뇌격으로 처분했다. 경순양함 나가라는 키리시마를 견인하려고 시도하였으나 기관실이 침수되자 포기했다. 구축함 아사나미, 테루즈키, 사미다레는 키리시마의 생존자들을 구출했고, 키리시마는 사망자 212명과 함께 새벽 3시 25분에 전복되어 53분에 침몰했다. 워싱턴은 다음날 해가 밝고 나서야 사우스다코타를 발견했다. 사우스다코타는 리 제독과 사전에 약속했던 랑데뷰 포인트에서 기다렸는데, 워싱턴에게 보호를 받는 상태에서 발전기를 멈춘 뒤 배전반 재기동에 성공했다. 사우스다코타는 이후 뉴욕으로 가서 2달간 수리를 받았다. 구축함 벤험은 그윈의 호위 아래 뉴칼레도니아로 향했으나 침수가 너무 심했다. 그래서 승조원들이 그윈에 옮겨탄 뒤 벤험은 포격으로 처분되었다. 그윈은 벤험의 생존자들과 함께 누메아로 복귀했다. 이후 그윈은 하와이로 복귀한 뒤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수리를 받았다. 이후 [[콜롬방가라 해전]]에서 최후를 맞았다. 곤도 제독은 미 전함들도 철수하였으므로 자신이 받은 임무 중 수송함대가 과달카날에 도착하도록 하는 것은 완수했다고 여기고, 비행장 포격 임무는 포기한 채 철수했다. '''일본군의 헨더슨 비행장 포격 시도는 또 다시 좌절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